생물학적 견해가 범죄학을 지배하던 무렵에 사회실증주의자는 19세기 사회에서 진행되던 주요한 사회적 변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사회학이란 분야를 개척했다. 사회학은 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이상적인 시각으로 여겨졌다. 수천 년간의 안정기를 지나고 세계는 인구 폭발을 경험하고 있었다. 1700년경에 6억으로 추산된 세계 인구는 1800년경에는 9억으로 증가했으며 , 수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영국의 맨체스터는 1706년 12,000명의 주민이 거주했는데, 1850년 그 인구가 40만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인구는 3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증가했다. 동력직기 등 기계의 발달은 가내공업을 쇠퇴시켰으며,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로 운영되는 공장 체계를 가져왔다. 농기계의 확산으로 식량 공급이 증가했지만, 농촌 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매우 감소시켰다. 이런 잉여 노동자가 도시 인구를 더 끌어올렸다. 동시에 정치적˙ 종교적˙사회적 전통은 계속 과학적 방법의 도전을 받았다.

사회학적 범죄학의 토대는 선구적인 사회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와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의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틀레는 범죄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자료와 통계학을 사용하도록 자극했다.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뒤르켕은 범죄를 정상적이며 필요한 사회적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들 두 사람의 시각은 현대 범죄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벨기에 수학자 케틀레는(프랑스인 앙드레미셸  게리Andre-Michel Guerry와 함께) 범죄학의 지도학파(cartographic school of criminology)로 불릴 수 있다. 이 접근법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개발 중이었던 사회통계학을 사용했다. 통계학적 자료는 인구밀도, 성별, 종교, 수입 등을 포함하는 주요한 인구학적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케틀레는 죄를 저지르는 성향에 대한 사회적 요인의 효과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수집된 자료를 연구했다.케틀레는 범죄에 대한 연령과 성별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계절, 날씨, 인구 구성, 빈곤이  범죄성과 관련된다는 증거도 발견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범죄율이 여름에, 남부 지역에서, 이질적인 인구 가운데서,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그는 범죄율이 음주 습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케틀레는 현대 범죄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회현상과 범죄의 관계에 관해서도 확인해 주었다. 그의 발견은 범죄가 롬브로소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어떤 사회적 토대를 갖는다는 것이다. 뒤르켕의 사회실증주의에 따르면, 범죄는 경제적 빈곤기와 번영기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범죄는 정상적이다. 범죄 행위가 전무한 사회를 상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행동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뒤르켕은 범죄의 불가피성이 사회 내의 차이점(이질성)과 연결된다고 믿었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르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형태의 행위를 사용하므로 그들 중 일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의' 범죄가 없어지더라도 인간의 결점과 사소한 비행이 범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 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범죄는 불가피하여 사회생활의 근본 조건 중 하나다. 뒤르켕은 범죄는 유용할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죄의 존재가 사회 변화를 위한 길을 닦아주기도 하며, 사회구조가 확고하지도 불변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달리 표현해서, 만약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식으로 행동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무조건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같은 보편적 동조성은 창조성과 독립된 사고를 방해한다. 이런 생각을 예증하기 위해 뒤르켕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이들의 도덕성을 타락시킨 죄인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뒤르켕은 범죄가 주는 또 하나의 이득은 사회의 병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범죄율의 증가는 사회 변화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으며, 범죄를 유발하는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미리 계획되도록 할 수 있다. '사회분업론(The Division of Labor in Society)'에서 뒤르켕은 '기계적(mechanical)'이라고 명명했던 소규모 농촌사회에서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 분업과 개인의 고립을 특징으로 하는 보다 현대화된 '유기적(organic)' 사회로의 변화가 가져오는 결과에 관해 기술했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적 가치의 상실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를 묘사하는 강력한 사회학적 개념인 아노미, 또는 규범과 역할의 혼란은 이런 변화로부터 발생한다. 뒤르켕의 자살에 관한 연구는  아노미 상태에 있는 사회가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고 지적했는데, 아노미는 자살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일탈도 유발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사회학적 실증주의의 우월성은 20세기 초 로버트 에즈라 파크(Robert Ezra Park), 어니스트 버지스(Ernest W. Burgess), 루이스 워스(Louis Wirth)와 시카고대학 사회학과 동료들에 의해 시작된 연구를 통해 확보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갖고 가르쳤던 학자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연구 스타일을 존중받아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로 불리고 있다. 이들 도시사회학자는 도시의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에 대한 연구를 개척했다. 그들의 작업은 한 세대의 학자에게 도시 지역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힘이 범죄적 상호작용을 창출한다고 결론짓도록 자극했다. 그래서 일부 도시 근린은 범죄의 '자연 지역(natural areas)'이 되었다. 이들 도시 근린에서는 학교와 가족과 같은 주요 사회제도가 붕괴될 정도로 빈곤 수준이 높았다. 사회 해체는 사회제도가 행위를 통제하는 능력을 약화했으며, 그 결과는 높은 범죄율로 나타났다. 그들은 범죄 행위가 개인적 특성의 함수가 아니라 올바른 인간관계와 발달에 부적합한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빈곤 수준 등 근린의 조건이 범죄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검토하면서 범죄생태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의 발견은 범죄가 개인적 병리의 결과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의 함수라고 하는 자신들의 신념을 구체화시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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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는 과학적 방법이 유럽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순수한 사고와 이성에 의존하기보다 사람들은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현상에 대한 신중한 관찰과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운동은 생물학, 천문학, 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을 자극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인류 진화에 대한 작업은 인간 행위가 과학적 원리에 의해 입증될 수 있을 것을 요구하는 19세기 '과학 숭배(cult of science)'를 자극했다. 과학적 방법이 자연현상에 적용된다면 인간 행위를 연구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지 않겠는가? 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는 사회를 연구하는 데 과학적 방법을 적용했다. 콩트는 "사회는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기초하여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말했다. 원시사회에서 사람은 무생물이 생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예를 들어 태양을 신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후의 사회적 단계에서 사람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콩트는 이 마지막 단계를 실증적 단계로 불렀으며, 그의 주장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실증주의자로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실증주의는 두 가지 주요 요소를 갖는다. 첫째, 인간 행위가 개인의 통제를 초월하는 힘의 기능(결과)이라는 신념이다. 이런 힘의 일부는 경제적 부와 계층의 효과 등 사회적이고, 일부는 전쟁과 기아 등 정치적이며 역사적인 것이다. 다른 힘은 사람의 두뇌 구조와 생물학적 체격, 정신적 능력 등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다. 실증주의의 두 번째 양상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자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엄격한 경험적 방법을 사용한다. 즉 조건과 사건에 대한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관찰과 측정을 믿었다. 실증주의자는 지능 등 추상적인 개념도 그것이 IQ 테스트에 의해 측정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 경우 그것이 과학적 방법에 의해 입증될 수 없기 때문에 그 개념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런 원리가 범죄 행위의 연구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실증주의 모델을 범죄학에 적용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는 인상학자(Physiognommists) 요하나 카스퍼 라비터(J. K. Lavater)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는 귀, 코, 눈의 모양과 각각의 간격이 반사회적 행위와 관련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범죄자의 얼굴 특성을 연구했다. 프란츠 요제프 갈(Franz Joseph Gall)과 같은 골상학자(Phrenologists)는 신체적 특성이 범죄 행위와 연관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두개골과 머리에 있는 혹의 모양을 연구했다. 골상학자는 외부 두개골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뇌의 어느 부분이 신체 활동을 통제하는지 말해 준다고 믿었다. 다른 믿음은 두뇌가 행위를 통제하는 서른 개의 다른 영역이나 기능을 가졌고, 영역이 클수록 더 활동적이며, 이 크기는 두개골의 윤곽을 검사하면 알 수 있고, 두뇌 영역의 상대적인 크기는 운동과 자기 훈련으로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골상학자의 기법과 방법이 더 이상 실행되지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범죄를 연구하려고 한 초기 시도였다. 19세기 초에는 정신이상이 범죄 행위 패턴과 연결되었다. 프랑스 정신의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필립 피넬(Philippe Pinel)은 일부 사람은 정신질환이 없지만 비정상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정식병질적 퍼스널리티(psychopathic personality)로 불리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정신착란이 없는 조병(maniesans delire)이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1812년 미국인 벤저민 러시(Benjamin Rush)는 병자들을 '타고난 초자연적 도덕적 비행인'으로 묘사했다. 또 다른 초기의 범죄학적 개척자인 영국의 의사 헨리 머즐리(Henry Maudsley)는 정신이상과 범죄 행위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범죄는 그들의 비정상적인 성향이 방출되는 일종의 출구다. 그들이 범죄자가 아니었다면 미쳤을 것이고, 범죄자가 됨으로써 미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초기의 연구 노력은 범죄 행위의 열쇠로서 뇌의 기능과 퍼스널리티로 관심을 옮겨 놓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무의식에 대한 작업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으며, 행위의 심리학적 토대를 굳건히 확립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군의관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가 법 위반자와 일반인이 신체적으로 다른지 과학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처형된 범죄자의 시체를 연구했다. 롬브로소는 심각한 위반자 '폭행이나 절도를 상습적으로 행하는 사람'의 경우 범죄자의 특성을 타고난다고 믿었다. 이런 '타고난 범죄자(born criminals)'는 범죄자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육체적 문제를 물려받았다. 롬브로소는 타고난 범죄자는 격세 유전적 이상성(atavistic anomalies) '신체적으로 원시시대의 야만인과 유사한 격세유전'으로 고생한다고 주장했다. 범죄자는 날고기를 먹어 치우는 육식동물과 야만인한테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턱과 강한 송곳니를 갖고 있다고 믿어졌다. 이런 특성은 퇴화한 가계로부터 간접적인 유전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데 , 그런 가계의 구성원은 흔히 정신이상, 매독, 알코올중독 등으로 고생한다. 그는 '범죄자의 가족과 관련되는'직접적인  유전은 범죄의 이차적 원인이라고 믿었다. 범죄인류학(criminal anthropology)에 대한 롬브로소의 생각은 그 아이디어를 채택한 논문과 책을 통해 미국에 도입되었다.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에 대한 그의 통찰은 많은 추종자를 만들었으며, 그의 지식은 범죄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다. 그는 사실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다. 세기말까지 미국의 학자들은  '행형학'과 '범죄학'을 논하고 있었다. 롬브로소의 엄격한 생물학적 결정론은 더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자신조차도 나중에는 모든 범죄자가 생물학적 격세유전적 특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오늘날 범죄가 어떤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다고 제안하는 범죄학자들은  환경적 조건이 인간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믿는다. 이 같은 사실에서 신체적 정신적 특성과 사회환경, 행위 간의 가정된 연결을 반영하기 위해 생물사회적 이론(biosocial theory) 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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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자들은 법의 본질과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일탈행위가 범죄화되는과정과 역으로 범죄 행위가 비범죄화되거나 합법화되는 과정을 모두 연구하고 있다. 어떤 경우 개인, 조직, 정부기관 등은 단순한 일탈 행위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은 매우 위험해서 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반 대중과 입법가 모두에게 확신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1930년대 연방마약통제국(Federal Bureau Of Narcotics)의 수장이었던 해리 앤슬링거(Harry Anslinger)는 당시만 해도 사용과 소지가 합법적이었던  마리화나의 위험성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잡지 기사, 공개 발표, 대중의 증언 등을 활용했다. 1938년 마리화나세법(the Marijuana Tax Act of 1938)의 통과를 심의하는 하원위원회(House Ways and Means Committee)의 증언에서 엔슬링거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플로리다에서  21세 청년이 약물을 복용한 상태에서 자기 부모와 형제자매를 살해했는데, 그가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시카고에서는 최근 두 명의 소년이 마리화나를 흡입한 상태에서 경관을 살해했다. 얼마 전 우리는15세 소년을 발견했는데, 의사는 그가 마리화나를 지속적으로 흡연해 미쳐 가고 있다고 말했다. 추적 결과 경찰관들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자신이 재배한 마리화나를 판매하고 있는 한 남자를 체포했다.

앤슬링거의 노력으로 일탈 행위인 마리화나의 사용은 범죄 행위로 규정되었으며, 이를 사용하는 시민은 범죄자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약물정책동맹(Drug Policy Alliance) 등 몇몇 전국 규모의 조직들은 엄벌주의적 약물 관련 법규를 폐지하고 앤슬링거의 '도덕적 성전(moral crusade)'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마약과의 전쟁'이 마약 거래자를 처벌하기 위해 과도하면서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4년 동맹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해결하려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사실 마약과의 전쟁 그 자체를 통해 유발되었다. 이를테면 '마약 관련'범죄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불변의 법칙을 마약금지정책이 왜곡한 직접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HIV와 C형간염 등 공중보건 문제는 모든 깨끗한 바늘의 접근을 막는 무관용적 법규에 의해 오히려 악화 되었다. 마약과의 전쟁은 가족적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재소자들의 아이들은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실업과 약물 남용, 비행의 위험에 처해 있다. 약물 남용이 나쁘지만 마약과의 전쟁은 더 나쁘다.

오늘날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마약의 일부가 과거에는 공개적으로 판매되고 의학적으로 유익한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헤로인은 지금 중독성이 강하고 위험한 약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는 통증을 완화해주는 성질이 있어 화자들 사이에 '영웅' 대접받기도 했다. 

일탈적이지만 합법적인 행위와 불법적이며 범죄적인 행위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기 위해 시작된 도덕적 성전은 1930년대에 끝나지 않았다. 2004년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은 "반복적이고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한 이유"로 연방통신위원회(FCC)로 부터 벌금에 처해졌다. 정부의 행위는 해당 방송사에 스턴의 쇼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에 발끈하여 스턴은 자신과 비슷한 수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정부 관계자에게 공격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오프라 윈프리 쇼의 원고를 자신의 웹 사이트에 게시했다. 스턴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검열하는 데 매우 화가 났으며, 공영방송사를 떠나 규제받지 않는 위성라디오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스턴은 위성라디오사를 위해 자유로운 상업용 라디오사를 그만두었다. 요컨대 범죄학자들은 일탈의 개념과 그것의 범죄성(criminality)에 대한 관계의 관심을 갖는다. 일탈 행위의 가변적 의미는 범죄의 개념과 관심을 갖는다. 일탈 행위의 가변적 의미는 범죄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범죄와 범죄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다. 비록 성문화된 형법이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지만, 이것은 범죄를 정의하고 처벌을 규정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법을 위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은 추측만 될  뿐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중세(1200~1600)에는 미신과 악마의 홀림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사고를 지배했다. 사회적 규범과 종교적 관행을 위반한 사람들은 마녀이거나 악마에 홀린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에는 악마에 홀린 사람을 말뚝에 묶어 화형에 처했는데, 이런 관행은 17세기까지 지속되었다. 1581~90년에 프랑스 로렌(Lorraine)의 종교재판소 소장이었던 니컬러스 레미(Nicholas Remy)는 900여 명의 마법사와 마녀를 화형에 처할 것을 명령했다. 마찬가지로 독일 트리에(Trier)의 주교였던 피터 빈스필드(Peter Binsfield)는 6,500명의 마법사와 마녀에게 죽음을 명했다. 16~17세기 유럽 전역에서는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이 마법을 이유로 처형되었다. 또한 건강하지 않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자손을 낳는 가족이 있으며, 그들의 사회적 부적응은 본질적으로 '열등한 혈통'에 기인한다고 믿기도 했다. 당시에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잔인한 고문이 행해졌다. 폭력범이나 절도범으로 기소된 사람은 채찍질, 인두질, 신체 절단, 처형 등 매우 잔인한 형벌을 받았다.

18세기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등 사회철학자들은 인간 행위가 합리적 사고의 결과라는 견해를 갖기 시작했다. 벤담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따르면 사람들은 행동하기에 앞서 그것의 비용과 이득을 저울질한 후 자신들의 행위가 즐거움을 증가시키고 고통을 감소시키리라고 믿게 될 때 행동으로 옮긴다.이는 잠재적인 법 위반자가 처벌의 고통이 범죄의 이득을 넘어선다고 확신하면 범죄 행위는 제거되고 통제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자신의 유명한 논문 '범죄와 처벌에 관하여(On Crimes and Punishment)에서 범죄 행위에 대한 이런 원리를 적용했다. 그는 사람들이 즐거움은 누리고 고통은 피하려 믿었기 때문에 가혹한 처벌과 일상적인 고문의 사용은 부적절하며 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중죄인이 사형당하는 경우 이는 범죄자가 범죄의 심각성을 강화시키지 않도록 유도하는 인세티브를 없애게 된다고 생각했다.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처벌의 고통이 공평하고 균등하며, 범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비례하도록 시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베카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벌은 본질적으로 공개적이고, 신속하고, 필요성이 공감되고,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해야 하고, 범죄에 비례하고, 법으로 명령받아야만 한다. 베카리아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글은 오늘날 고전 범죄학으로 불리는 것의 핵심을 이룬다. 18세기 당시의 고전 범죄학 이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해결책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갖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법적 해결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생각된다. 범죄를 선택하는 것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통제된다. 범죄를 효과적으로 제지하기 위해서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통제된다. 범죄를 효과적으로 제지하기 위해서는 처벌이 엄격하고, 확실하며, 집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고전적 시각은 두 세기 넘게 형벌 관행에 영향을 미쳤다. 법은 범죄에 비례하도록 만들어졌으므로 가장 심각한 범죄는 가장 엄한 벌을 받았다. 사형은 폭넓게 집행되긴 했지만 점차 가장 심각한 범죄에만 집행되도록 했다. 그래서 캐치프레이즈가 "처벌은 범죄에 맞도록"이었다. 19세기에는 하나의 새로운 시각이 고전이론의 타당성에 도전했고, 범죄의 원인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방식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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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 사건은 확실하게 미국 사회의 사법에 관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형사 재판에서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예증해 준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이미 심리된 경우 공정한 배심원을 선정하고 객관적 재판을 수행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언론이 피해자의 성적, 의학적 이력을 노출시키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그녀의 과거가 범죄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가? 만약 브라이언트가 어느 가게를 턴 것으로 기소되었다면, 가게 주인의 재정 정보나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공정한 일인가? 그런 사항이 그 사건에서 유죄를 입증하기에 적절하다고 보는가? 또한 이 사건은 범죄의 정의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예증해 준다. 브라이언트는 그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그것이 강간이었다는 점은 부정했다. 나중에 그는 피해자가 당시의 행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고, 따라서 성폭행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합법적 행위와 불법적 행위 간에 분명한 경계선이 그어질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누가 그 선을 그을 것인가? 범죄에 대한 정의에 주관적 해석이 가능한가? 형사사건에서 용의자의 인종과 민족적 배경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지만, 브라이언트가 백인 여성에게 고소당한 유명한 흑인 운동선수라는 사실은 대중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또 다른 O.J. 심슨인가? 미국의 흑인 남성이 형사사법 체계로부터 잘못 기소되는 일이 그토록 흔하게 발생하는가? 만약 브라이언트가 정말로 그 소녀를 공격했다면 돈 많고 유명한 운동선수가 성폭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없는 충동적 성향을 지녔기 때문인가? 브라이언트 사건과 다른 유사한 형사 재판에 의해 제기되는 범죄와 그것의 통제에 관한 질문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범죄 행동의 특성, 정도, 원인, 통제를 연구하는 학문 분과인 범죄학에 대한 지속적이면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범죄학자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범죄의 패턴과 추세뿐 아니라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타당성 있고 신뢰할 만한 자료 수집에 힘써 왔다. 범죄에 관한 의견이 개인적 경험이나 편견, 가치에 의해 채색될 수 있는 미디어 평론가와 달리 범죄학자들은 범죄와 그것의 결과를 연구할 때 객관성을 유지한다.

범죄학은 범죄 행위를 연구하는 과학적 접근법이다. 범죄학에 대한 고전적 정의로, 범죄학자 에드윈 서덜랜드(Edwin Sutheland)와 도널드 크래시(Donald Cressey)는 이렇게 말했다. 범죄학은 범죄라는 사회현상에 대한 지식체다. 그것은 법을 만들고, 어기고, 법규 위반에 대해 반응하는 과정을 그 영역으로 한다. 범죄학의 목적은 이런 법, 범죄, 처우의 과정에 대한 일단의 일반적이며 입증된 원리와 다른 유형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서덜랜드와 크레시의 정의는 범죄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몇 가지 관심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1) 형법의 발전과 범죄를 정의하기 위한 형법의 사용, (2) 법규 위반의 원인, (3) 범죄 행위를 통제하기 위한 방법 등이다. 또한 이 정의는 입증된 원리란 말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범죄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수행할 때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들은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을 만들고, 그 자료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을 만들고, 연구 문제(가설)를 설정하고 경험적인 것을 대답함으로써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범죄학자들은 연구를 수행하고 이론을 검증하는 데 실험 설계와 세련된 자료 분석 등 확립된 사회과학적 탐구 방법을 사용한다. 범죄학이 본질적으로 다학제적 학문이고, 범죄학자는 다양한 분야 -사회학이 가장 흔하지만 형사사법학, 정치학, 심리학, 경제학, 자연과학도 포함- 에서 훈련받아 왔기 때문에 그들은 연구를 수행하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범죄학과 형사사법(학)이란 용어는 서로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 둘을 혼동하거나 같은 것으로 말하지만, 이들 연구 영역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범죄학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원인(기원) 정도, 성질을 설명하는 데 반해 형사사법학은 경찰, 법원, 교정기관 등 사회통제기관에 대한 연구를 말한다. 범죄학자들은 주로 범죄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 관심을 갖지만, 형사사법학자들은 효과적인 범죄 통제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두 분야가 모두 범죄와 관련되어 중복이 불가피하기는 하다. 범죄학자들은 형사사법기관이 어떤 일을 하고, 범죄와 범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사법 경찰이 범죄율과 범죄 추세를 어떻게 규명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형사사법 전문가들은 범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죄 예방, 갱생 프로그램 등의 설계를 시작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형사사법학 프로그램이 범죄학을 중요하게 다루고, 범죄학 코스가 형사사법기관의 존재 가치를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범죄학은 때때로 일탈 행동에 관한 연구와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일탈행위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위다. 일탈 행위라는 광대한 스펙트럼에는 폭력범죄에서부터 나체주의 단체가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위가 포함된다. 범죄와 일탈은 모든 범죄가 일탈적이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며, 모든 일탈 행위가 불법적이거나 범죄적인 것은 아니므로 자주 혼동된다. 예를 들어 마리화나 등 레크레이션용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일탈적인 행동인가? 상당한 비율의 인구가 그것을 사용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가 사회규범을 벗어난 일탈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많은 일탈 행위가 양심을 교란하고 침해하는 것일지라도 모두 범죄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행인이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목격하고도 구조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행위를 냉담하고 비도덕적이며 일탈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에 처한 사람을 반드시 구조해야 한다는 것이 법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한 그에게 어떤 법적 조처도 취해지지 않는다. 일반 시민의 경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화재가 난 건물이나 바다에 뛰어들 것을 요구하는 법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범죄 행위가 일탈 개념의 범주에 포함된다. 반대로 모두는 아니지만, 일부의 일탈 행위는 범죄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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